본문 바로가기

성담의 시

밤길 / 성담 임상호 밤길 / 성담 임상호 호젓한 밤길 거닐며 고개 돌려 하늘 바라보니 구름에 싸인 초승달이 삐죽 얼굴 내밀며 외로이 떠있다. 사방은 고요한데 시작도 알 수 없이 불어오는 바람은 홀로 바쁜 걸음으로 갈대숲을 오간다. 바람에 이끌려 서걱서걱 서로의 몸 부딪히며 노래하는 갈대의 소리에 외롭던 나그네는 위로를 받네. 머리 위에 뜬 초승달은 나그네의 발길에 한줄기 가녀린 빛을 내려 어두운 밤길 열어주네. 더보기
주홍과 분홍사이 / 성담 임상호 주홍과 분홍사이 / 성담 임상호 사랑한다 기껏 고백하였는데 아무런 대꾸도 없이 딴청을 부리면 얼굴은 주홍으로 변하지. 시도 때도 모두가 가려야 한다는 그 말을 믿고 언제인지 모를 그때를 기다리다 놓쳐버린 사랑의 타임. 이제는 모두를 버려야 할 때라며 마음까지 내려놓았는데 울컥 코끝이 찡할 사랑이 다가서면 이때는 분홍. 더보기
소리 / 성담 임상호 소리 / 성담 임상호 쓰르람 쓰르람 어디선가 조용한 산사를 깨우는 매미소리 들린다. 바람결에 풍경소리 나지막이 들리면 나뭇가지 위 요람을 타던 새 한 마리 날아간다. 적막의 숲에 낯선 나그네의 발길이 멎고 임종 알리는 숨소리만 들릴 듯 말 듯... 일순 풀벌레 소리 요란하더니 다시 모든 소리 멎는다. 더보기
가난 / 성담 임상호 가난 / 성담 임상호 그저 때가 되면 봄날이든 그게 여름이나 가을이든 상관없이 십 색의 꽃들이 무리 지어 핀다. 처음 필 때만 잠시 눈에 머물다가 막상 지천으로 피고 질 때는 으레 핀다는 무관심으로 퇴색되어 꽃들만이 삶과 죽음의 시기를 알지. 지닌 것 없는 가난한 사람은 들녘의 보잘것없는 앉은뱅이 야생화 한송이도 감지덕지 날아가버릴 향기마저 아까워하지. 비단 어디 꽃뿐이랴 흘러가는 흰구름과 충혈되어 서럽게 붉은 노을마저도 그리워 가던 발길도 멈추네. 더보기
사랑역 / 성담 임상호 사랑역 / 성담 임상호 내 나이 열일곱 즈음 남들도 다한다는 풋사랑을 부러워하던 순진무구한 시절이 있었다. 아마도 그 나이쯤 남녀 또래들이 어울려 사랑을 갈망하던 사랑역이 명동에 있었던 모양이다. 거리를 나서면 섣부른 청춘을 꿈꾸던 여드름 투성이 아이들이 꾸역꾸역 몰려들었지. 나름대로의 풋사랑 조각마저도 인연의 산물이라 소중히 여기며 마음에 새겨두었겠지. 짝 찾지 못한 불쌍한 청춘은 다음 만남을 기약하며 어쩌면 이번에는 2번 출구에서 숙명 찾는다며 밤 지새우기도 하겠지. 더보기
소중한 터전 / 성담 임상호 소중한 터전 / 성담 임상호 하루의 온갖 잡다한 일정 게눈 감추듯 이미 정리하고 어둠이 밀려오기 전 걸음은 낮보다 더욱더 빨라진다. 보금자리에 누워 오늘과는 사뭇 다른 꿈을 창조하기 위해 내일은 또 어떤 희망으로 찬란한 아침 열며 달려갈까. 다람쥐 쳇바퀴 같은 일상이지만 어제 보다 색다른 길 걸어야지 지금껏 쌓아온 터전을 보다 더 견고하게 마련하는 그날까지. 더보기
기약 / 성담 임상호 기약 / 성담 임상호 한잔의 술 핑계로 대담해지자 둘만의 오붓한 공간 찾아 밤거리를 누볐네. 어둠이 점점 깊어지는 밤 네온이 점멸하며 유혹하는 노래방에 이끌려 갔네. 간주곡 사이사이 양어깨를 살며시 잡아당겼지만 그 흔한 입맞춤은 할 수 없었네. 음악은 애절한데 용기는 마음 한구석에 저당 잡힌 채 다음을 또 다음을 기약하였네. 더보기
정거장 / 성담 임상호 정거장 / 성담 임상호 덜컹거리다 외마디 기적소리만 남기고 평행선을 달려가는 밤을 잊은 열차. 어차피 기다려봐도 마중할 이 없는 무심한 정거장은 비에 젖은 밤처럼 쓸쓸하기만 하다. 빗속에 떠나는 열차의 뒤꽁무니만 물끄러미 바라보다 비에 젖어 희미해진 가로등 앞을 거니는 나그네. 가도 가도 다시금 오르내리야 할 수많은 정거장은 언제쯤이나 맑게 개인 미소 지으려나.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