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체 글

잊힌 단어 / 성담 임상호 잊힌 단어 / 성담 임상호 가뭄 끝에 갑자기 많은 비가 내리면 조용히 흘러만 가던 작은 냇물도 폭포라도 된 것처럼 콸콸 소리를 내어 흐릅니다. 종심의 나이에 들어선 늙은 육신도 동반이라는 짝을 맞으면 마치 젊음이라도 되찾은 양 가슴이 쿵쾅거리며 남다른 세계로 힘찬 발길 내딛습니다. 좋아한다는 말 한마디에 뛸 듯 기뻐하며 청춘의 기억을 더듬고 이미 사랑이라는 낯선 짧디 짧은 단어만 떠올려도 마음은 요동칩니다. 더보기
달처럼 / 성담 임상호 달처럼 / 성담 임상호 세상은 잠들고 깊어가는 밤 휘황찬 둥근 보름달을 갉아먹는 늑대 무리 때문인가. 초승달에서 상현달과 하현달 그리고 그믐달로 이어져 존재조차 없어질 것만 같은 달. 그러나 어김없이 한 달이 지나면 보름달이 되듯 박박 긁어 퍼주어 바닥난 내 사랑도 다시 차오르리라. 더보기
단절의 강을 건너서 / 성담 임상호 단절의 강을 건너서 / 성담 임상호 세월의 무상함 속에서도 굴곡의 시간을 지내며 마음의 문을 닫았다. 그럴 때마다 바람은 빗장 걸어둔 문 열어젖히려는 듯 사계(四季)를 가리지 않았지. 단단히 얼어버린 마음의 얼음을 깨는 쇄빙선이 우연을 미끼로 무수히 다가왔지만 문은 결코 열리지 않았어. 마음의 문은 숙명이라는 이름의 인연은 필연이라는 단어로 찾아와 열리고 말았지. 그 후 단절의 강은 얼지 않았어 아마도 생을 다하는 날까지 곁에 머물러 줄 것만 같아. 더보기
피붙이 / 성담 임상호 피붙이 / 성담 임상호 장례식장의 굴건제복 차려입은 장성한 아들이 지팡이 짚고 아버지 영정 앞에 서있다. 영정 속 늙은 아버지는 웃음 진 얼굴로 바라보시지만 아무 말도 없으시다. 자신을 빼닮은 아들에게 많이 컸다고 잘 자라서 고맙다고 속으로만 웅얼거리신다. 세상 하직한 아버지와 아버지 없는 세상을 살아갈 젊은 아들이 향불 앞에서 어색하게 한마디 말도 없이 서있다. 더보기
그날 / 성담 임상호 그날 / 성담 임상호 굳게 닫혔던 빗장이 풀리고 비극이라는 창고에 쌓아두었던 눈물을 글썽이며 마음을 열어준 널 보며 나는 어금니를 깨물었지. 훔칠 수 없는 진실을 도둑처럼 네 마음에 스며들어 전부를 훔친 그 순간부터 잠들었던 나의 사랑을 일깨워 동반의 길을 가자했지. 가녀린 어깨를 감싸 안고 사랑의 밀어 같은 음률에 내어 맡긴 너의 뜨거운 몸을 느낀 순간 감전된 듯 감당치 못할 두근거림으로 사랑한다는 그 짧은 말도 건네지 못했어. 더보기
동반의 길 / 성담 임상호 동반의 길 / 성담 임상호 어차피 가야 할 길이라면 임의 손 부여잡고 서로의 맘 얹혀 함께 가오리다. 홀로 가다만 아쉬움의 그 길을 이제 이인삼각이 되어 즐거이 가오리다. 아픈 기억일랑 추억의 늪에 잠재우고 일곱 빛 무지개길을 발맞춰 가오리다. 어제는 가시밭길처럼 상처뿐이었을지라도 오늘은 두 손 어루만지며 동반의 길로 가오리다. 더보기
해탈의 경지 / 성담 임상호 해탈의 경지 / 성담 임상호 뉘 부르지도 않은 여름이 봄을 밀어내고 그 자리를 꿰차고 천연덕스럽게 앉았다. 꽃들이 수줍게 피어나던 뜨락엔 무성한 줄기 뻗은 나무가 파수꾼처럼 서있다. 머잖아 저 푸른 잎새도 붉게 퇴색해 안녕을 고하며 겨울준비에 부산을 떨겠지. 자연의 순리처럼 눈여겨보지 않으면 우리네 인생도 찰나처럼 지고 말겠지. 아쉬움을 느낄 나이가 되면 늘 자신만만하던 젊음의 패기마저 주눅 들 텐데. 인생사 앞일 모르고 즐기는 게 묘미라는 걸 뒤늦게 알아야 오히려 약이 되는 거야. 더보기
비와 나그네 / 성담 임상호 비와 나그네 / 성담 임상호 터벅터벅 고달픈 인생의 길 주어진 여정에 따라 정처 없이 떠나는 나그네 발길. 어제는 땡볕에 시달리다 오늘은 굵은 빗줄기에 엎어진 김에 쉬어간다는 말처럼 처마 밑에 쭈그려 앉았다. 연신 뿜어내던 푸른 담배연기도 사라지고 바람에 이끌려 잎새마저 떠나면 내리는 빗속에 나그네도 어디론가 사라진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