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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담의 시

눈물 / 성담 임상호 눈물 / 성담 임상호 진눈깨비가 속절없이 내리는 겨울 터벅터벅 밤길을 거닐다 신호등 앞에 섰다. 짧은 시간 주마등처럼 펼쳐지는 지난날들의 추억 때문에 센티한 기분이 든다. 왜 갑자기 아무 소용도 없는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어 눈물을 글썽이는가. 바람에 실려온 먼지 탓일까 아니면 점점 나이가 드는 세월 탓에 이토록 슬퍼지는가. 더보기
그날 / 성담 임상호 그날 / 성담 임상호 불현듯 초저녁 길을 걷다 지난겨울 첫눈 내리던 때의 기억을 더듬어본다. 난분분 바람결에 꽃잎 떨어지듯 함박눈은 어깨 위에 내리고 미소가 꽃처럼 피던 날. 발갛게 물들던 수줍음은 이내 사라지고 어색한 팔짱을 끼면 싱글벙글 입이 귀에 걸리던 날. 하지만 그날 그 추억은 지금도 기억 속에 여전한데 다시 볼 수 없어 허전한 날. 더보기
늙은 아이 / 성담 임상호 늙은 아이 / 성담 임상호 겉으로야 어느 누가 보더라도 쪼글쪼글 주름이 먼저 보이는 영락없는 할아비다. 그러나 거울 속의 영감은 반세기 전으로 홀로 돌아가 푸르디푸른 시절 젊음의 기억에 빠져있다. 길거리에 수없이 흘리고 간 흩어진 사랑의 조각들을 이것저것 애써 꿰맞춰보지만 이젠 형태조차 신기루처럼 사라진 지 오래. 철부지 같은 영감은 어린아이처럼 어제의 추억만 두 손 가득 쥔 채 세월 가버린 줄 아직도 모르나 보다. 더보기
먹물 한 방울 / 성담 임상호 먹물 한 방울 / 성담 임상호 시선을 고정한 채 붓을 들어 벼루의 먹물을 찍는 순간 새하얀 화선지에 떨어진 먹물 한 방울. 생각지도 못한 먹물 한 방울은 서서히 화선지를 적시며 퍼져나간다. 그깟 먹물 한 방울 떨어졌다고 인생 허비한 것도 아닐진대 심장은 소리 없이 고동을 친다. 찰나 같은 한순간에 심장이 떨리듯 사랑의 시작도 이처럼 가슴을 떨리게 한다. 더보기
조각난 기억 / 성담 임상호 조각난 기억 / 성담 임상호 굽이굽이 산모퉁이 돌고 돌아 아름드리 느티나무 보이면 옛이야기 들춰내도 질리지 않는 고향이다. 뉘엿뉘엿 해 너머 가며 구름과 함께 만든 붉은 노을에 마음 뺏길 즈음 굴뚝엔 파란 연기가 피어오른다. 가마솥 걸린 아궁이에 청솔가지 넣으며 저녁 준비에 한창인 어머니의 정겨운 모습도 보인다. 잊힌 세월 탓에 지금은 모든 게 홀연히 사라졌어도 마음속 깊은 곳엔 언제나 그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네. 더보기
입맞춤 / 성담 임상호 입맞춤 / 성담 임상호 늦은 밤 그토록 기다리던 어두운 밤이 우리 곁으로 다가온 날. 할 말을 모두 잊어버린 탓에 서로의 얼굴만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던 밤. 누가 먼저랄 틈도 없이 목을 껴안고 불쑥 들이민 서로의 입술. 농익은 토마토 속살처럼 부드러운 달큼한 혀를 빨고 또 빨다가 지새운 그 밤. 더보기
바람 / 성담 임상호 바람 / 성담 임상호 사랑을 속삭일 때는 봄날의 남녘 따사로운 훈풍과도 같다. 갈팡질팡 밀고 당기기에 서툰 바람은 앞뒤 가림 없이 벽을 치받아 상처를 낸다. 이별의 순간이 다가오면 천둥을 동반한 폭풍우와 같이 서럽게 눈물을 흘린다. 그러나 바람은 인간처럼 왔던 길을 되돌아가지 않는다. 더보기
저녁 예찬 / 성담 임상호 저녁 예찬 / 성담 임상호 서서히 정겹던 햇살이 안녕을 고할 무렵 흰구름 물들이던 노을이 이슬 위에 내려앉았다. 부산하게 유난을 떨던 물비늘마저 느려진 바람 탓에 강물은 더 이상 흔들리기를 멈춘다. 훈풍을 타고 낯익은 임의 향기 싣고 온 저녁의 온화함에 마음마저 평화롭기 그지없다. 자연의 풍광이 오늘도 거저 던져준 귀한 선물 덕에 빈곤하던 눈이 호사를 누린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