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움 / 임상호
풋풋한 젊음의 시절은 찰나처럼 지났어도
드높은 정상에 올라 남들과 같이 산울림 따라 하고
걸어온 길 되새김하듯 자랑스럽게 바라본다
쇠잔한 기력으로도 아등바등 살아온 세상이
아직은 만만한 길이라며 마치 이 시대의 선구자인양
의기양양 개선장군처럼 앞서나간다
하지만 세상의 높은 벽에 막혀 좌절을 겪으며
흰 눈 쌓인 길을 눈물로 걸으며 나중에 이 길을 밟고
따라올 자식들에게만큼은 자랑으로 남겨 보겠다는 야심은
야멸차게 산산이 조각나고 말았다
돌이켜보면 볼수록 점점 부끄럽게 느껴지는 이 길은
다시는 그 누구라도 따라와서는 안 되는 냉혹한 길임을
뼈저리게 느끼며 눈에 새긴 발자국을 꽁꽁 얼어붙은
차가운 손으로 마치 비질하듯 지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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